DAILY MEMO SCRAP RECIPE GUEST

셋째. "어차피 세상은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구조이고 우리 모두 본성엔 이런 이기적인 유전자가 있다"는 우생학적 합리화와 "난 적어도 내가 그렇단 사실을 인정이라도 하지 넌 뭐냐"고 외치며 상대를 위선자로 정의하는 전략의 결합이다. (…) 이 논리를 구사하는 당사자 자신도 탄압을 당했던 약자라면 그 위력은 배가 된다. "나 또한 이 사회의 약자로 보호받지 못하고 살아남기 위해 이 꼴 저 꼴 다 보며 살아왔지만 아무도 날 보호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난 살아남기 위해 나보다 약자를 때리는 건데, 너희도 내심 그러고 싶으면서 겉으로만 위선을 떠는 것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내가 얻어맞을 땐 다들 어디 있었는데? 라고 말할 수 있으니 말이다.


블랙넛은 자신의 가사에서 피해자성 탄핵과 우성화-위선자 전략을 적극적으로 밀고 있다. 블랙넛은 "솔직히 난 키디비 사진 보고 딸 쳐봤지"라며 특정 여성 아티스트를 희롱하는 가사를 써놓고도, 이를 "너넨 이런 말 못하지. 늘 숨기려고만 하지, 그저 너희 자신을. 다 드러나, 니가 얼마나 겁쟁이인지"라는 가사를 통해 정당화하려 한다. '찌질하지만 진솔한 나'와 '나와 속내는 똑같지만 그걸 숨기는 겁쟁이 위선자'라는 이분법으로 물타기를 시도한 것이다. 래퍼들에게 돈이나 여자 말고 사회적인 이슈를 주제로 랩을 해보라 충고했던 래퍼 엠씨 메타를 겨냥한 공격 또한 마찬가지다. "니가 진짜 걱정하는 건 추락하는 니 위치지, 아니잖아 세월호의 진실이"라는 가사 안에는 '어차피 인간은 모두 제 위치만 걱정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우생학과 '넌 그런 속내를 말 못하지만 난 다 말할 수 있다'며 상대를 위선자로 몰아가는 논점왜곡이 함께 도사리고 있다.


사람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저마다 마음 한구석에 이기적이고 그릇된 욕망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것처럼, 그 욕망을 사회화 교육과 이성으로 잘 통제해 타인을 해하지 않는 선 안에 가두는 것이 인간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계약이다. 만약 본인이 주변의 그릇된 시선과 구조적 모순 탓에 피해를 입었을 때 이를 극복하는 길은 내게 피해를 입힌 구조 자체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것이지,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향해 제 폭력적 욕망의 고삐를 풀어 피해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이 당연한 사회계약을 무시하며 "너도 나와 똑같은 존재"라는 식으로 비난을 피해가는 래퍼가 있고 "어차피 우리가 소속 아티스트를 헐벗게 해서 무대에 세우면 너도 좋아할 거면서"라고 말하는 소속사가있다.


성희롱하는 가사 써놓고 "너넨 이런 말 못하지", 섹시코드 비난에 "어차피 너도 좋아할 거면서".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윤리적 폐허에 도달했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들은 '선비충 나셨네'라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이승한 (TV 칼럼니스트), 한겨레 <블랙넛과 찔려의 비뚤어진 전략>





블랙넛이 자신보다 수준 낮음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존재들은 여성, 노인, 환자다. 모두 사회적 약자들이며 특히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들이 끊임없이 누명을 씌워 '결핍'된 존재라고 낮추고 있는 존재들이다. (…) 하지만 블랙넛이 자칭한 '금기'는 금기가 아니다. 여기엔 어떠한 '새로움'도 없다. 찌질이를 배제하는 사회에서 열등감을 느끼며 살아왔던 약자가, 자신이 당했던 짓 그대로 자신보다 약한 대상을 공격하며 우위에 서려는 못난 전략이 있을 뿐이다.


그는 찌질이가 아니다. 블랙넛에게 '찌질이'는 그의 정체성이 아니라 단지 모든 논란을 막아 주는 단단한 쉴드일 뿐이다. 블랙넛의 현재 정체성은 그저 자신이 한때 약자였다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약자를 괴롭히는 질 낮은 존재다.


릴리슈슈, 고함20 <지극히 헬조선적인 랩퍼 '블랙넛' - 그는 찌질하지 않다>